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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불태우지 않는 대신,
일주일을 망치지 않기로 했다.

요즘 들어 자주 드는 생각이 있다. 예전엔 디자인학부생 시절부터 실무까지 밤낮없이 몰입하고 끝까지 버티는 게 미덕이었고, “얼마나 힘껏 달릴 수 있느냐”가 삶의 기준처럼 여겨졌다. 나도 그 공기 속을 달려왔다.

그런데 요즘의 공기는 다르다. 사회도, 사람도, 나 자신도 예전처럼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쏟아서는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치지 않는 것, 그러니까 꾸준히 이어갈 리듬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해진 것 같다.

아마 물질적 풍요의 역설일지도 모르겠다. 필요한 건 대개 채워졌고, 선택은 넘쳐난다. 공유된 방법과 절차가 일상을 표준화하며 서로를 조금씩 비슷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빨리’만으론 차이가 나지 않는다. 차이를 만드는 건 ‘오래’다. 압축성장의 뒤끝을 오래 들이마신 탓일지도 모른다. 한때 당연했던 방식이 이제는 사람을 쉽게 소진시키는 독이 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렇게 느끼는 건 아마 내 시간표도 한몫했을 것이다. 직무를 전환해 남들보다 조금 늦게 개발을 시작했고, 3~5년 차의 기복을 지나 8년 차인 지금에서야 이 감각이 선명해지고 있다. 늦게 출발한 만큼, 오래 가는 리듬의 중요성을 더 천천히, 깊게 배워왔다. 누군가는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해왔을 것이다. 나는 이제야 조심스럽게 배워가는 중이다.

예전에는 ‘열심히’만으로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됐다. 그런데 같은 방식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건 내게도 불친절했다. 그래서 속도를 조절하는 감각, 회복을 설계하는 습관, 관계의 간격을 조절하는 감각 같은 사용법을 바꾸기로 했다. 뼈대는 두고, 쓰는 순서와 강도를 바꾼다. 처음엔 낯설고 불편하지만, 그 불편이 나쁜 신호만은 아니다. 오래 갈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과정일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성과보다 지속, 속도보다 안정이 더 크게 다가온다. 번아웃을 피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며, 오래도록 호흡을 이어갈 수 있는 방식.

돌아보면 나를 지탱해온 건 폭발력이 아니라 버티는 힘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 힘을 오래, 무너지지 않게 이어가는 일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하루는 아끼고, 일주일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