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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가볍게
넘기지 못했던 사람의
기록

이 기록은
내가 왜 특정 관계와
감정 앞에서
그렇게까지 진지했는지,
왜 기대가 깨질 때마다
화가 나기보다
무너지는 쪽에 가까웠는지에
대한 뒤늦은 성찰이다.

시작은 ‘걱정’이라는 말에서였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쓰이던
‘걱정’이라는 말은
실제로
삶의 무게를 함께 감당하겠다는
태도라기보다는
말로 안심을 건네는 표현에
더 가까웠다.

물론
그 말 자체가
고맙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시의 나는
그 말이 의미하는 깊이를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겉으로는
늘 응원하는 말들이
오갔지만, 어째서인지
내 인생의 무게가
같은 세계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감각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그 차이가
더 분명해졌다.

내가 불안과 진지함 속에서
고민을 반복하고 있을 때에도
주변의 시간은 큰 흔들림 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걸 깨달았을 때
당황이 먼저 올라왔고,
내가 붙잡고 있던
어떤 전제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무너진 것은
사람이 아니라
내가 관계에 걸어두었던
전제였다.

내가 붙잡고 있던 전제

내가 붙잡고 있던
전제는 이것이었다.

“적어도
한 사람쯤은
내 인생의 무게를
같은 세계에서
바라봐 주지 않을까?”

그 전제가
흔들렸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남이랑 다를 게 뭐가 있지?

그 순간 관계의 특별성이 흐릿해졌다.

돌이켜보면
그 질문 역시
완전히 공정한 질문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려고
나름 신경 쓰고
노력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표현이 서툴러서인지 닿지 못했던.

다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문제는
누가 맞고 틀렸느냐가 아니라
서로 관계를 바라보던 깊이의
‘싱크’가 맞지 않았다는 데
가까웠던 것 같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깊이로
관계를 받아들이고,
그 한계를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그 사이에서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읽어내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기대는
자연스럽게 생겼고,
기대가 어긋났을 때
내 쪽에서 더
크게 흔들렸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의 감정은
이별이나 실망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기대를 전제로
관계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데서 오는
당혹감에 가까웠다.

왜 관계가 ‘증명’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

과거의 나는
관계를 통해
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
하고 있었다. • “나는 이 정도로 누군가에게 중요하다” • “나는 혼자가 아니다”

이걸 확인하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가
어딘가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집착이라기보다는
당시의 나에게는
꽤 현실적인 감각이었다.

시대상 어릴 때부터
“그래, 너는 그냥 너로도 충분해”라는 말을
자주 듣는 문화는
아니었기 때문에,

관계의 특별함은
허영이라기보다는
존재를 지탱하기 위한
임시 기준에 가까웠다.

왜 그때는 결핍을 인식할 여유조차 없었는가

그 시절의 나는
나를 계속
몰아붙여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멈추면 위험할 것 같았고
성찰은 사치처럼 느껴졌고

자기를 계속 밀어붙이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는 감각이 있었다.

결핍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더라도 오래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던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버티며 살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그 시기의 나에게는
충분히 큰 일이었다.

지금에서야 가능한 이유

혼자 살아보면서 • 혼자 결정하고 • 혼자 책임지고 • 혼자 무너지지 않는 경험

이 조금씩 쌓였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전제가
흔들리더라도
나까지 함께 무너지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특별해야만 유지된다”는 전제를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고,

결핍 역시
처음으로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의 나

나는 어떤 결핍을 안고 살아왔지만
그 결핍을 인식하고
언어로 정리하기 시작한 상태다.

자조적인 농담이 나올 만큼
감정과 거리를 두는 법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살아가려 했던 과거의 나를 향한
연민에 가깝다.

이 기록의 결론에 가까운 문장

나는 미련했던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혼자 진지했던 사람이었고,

특별함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느낄 만큼
그때의 나는
절박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특별하지 않아도
나를 지탱할 수 있는 기준이
조금은 생긴 상태다.

“아,
이때 내가
왜 이렇게 아팠고
왜 이런 인식이
가능해졌는지”

이 글은
그 지나온 지점의 좌표를 기록한 것이다.

덧붙임 — 너무 오래 혼자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돌이켜보면
내가 혼자서 많은 것을 해결하려 했던 데에는
꽤 익숙한 학습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무언가를 물어볼 때면

“좀 알아서 해라”
“왜 생각도 안 해보고 묻느냐”

같은 말이 돌아오곤 했다.

그건 누군가를 탓하기 위한
기억이라기보다는
당시에는
비교적 흔했던
자립을 먼저 요구하는 방식의 언어에 가까웠다.

성인이 된 이후에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자리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서 들은 적도 있다.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그 방식 자체가
특별히 낯선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그런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내 안에는
하나의 감각이 남았다.

  • 묻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 가능하면 혼자 해결하는 편이 낫다

지금 돌아보면
이건 성격이라기보다
그때 익힌 생존 방식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제는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비난보다는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아… 그러니 그렇게까지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