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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이 식은 자리에서

음흉한 사람들이 유난히
거슬리던 때가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계산이 보이고,
여지를 남기는 태도가 보이고,
말보다 의도가 먼저 읽히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에너지가 빠졌다.

한동안은 그게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가 여전히 사람에게 어떤 기대를 붙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적어도 조금은 더 솔직하고,
조금은 덜 계산적이길 바라는 마음 같은 것.

그래서 기대를 조금 내려놓아 보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예전에는 늘 배경음이 있었다.
기대, 실망, 불안, 관계의 진폭 같은 것들.
좋든 나쁘든 감정은 선명했고,
그 파동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지금은 그 진폭이 줄었다.
극적으로 좋아지지도,
극적으로 흔들리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그 조용함이 공허처럼 느껴졌다.
과열이 식으면, 일단 썰렁하니까~

사람이 빠진 것 같았지만,
정확히는 ‘기대 구조’가 빠진 자리였다.

그 자리에 남은 건
나와 나 단둘이 있는 시간이었다.

이전에는 관계 속의 내가 더 또렷했다.
누군가의 반응 속에서 나는 확장되어 있었다.
지금은 자극이 줄어든 상태의 나를 보고 있다.
덜 부풀어 있는 나,
덜 과장된 나,
덜 흔들리는 나.

조금 작아진 것 같기도 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조용함이 낯설었다.

그래도 망했다는 느낌은 없었다.
묘하게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감각이 남아 있었다.
아주 단단한 확신은 아니지만,
기초 체력 같은 신뢰는 있었다.

외롭다.
그런데 동시에 편안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인간에게 그림자가 있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계산하고, 여지를 남기고, 때로는 음흉해진다.
그게 평균값이라면,
나는 그 평균을 조금 낮은 진폭으로 살고 싶다.
어디까지나 바람이지만.

모두를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모두를 비난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살고 싶다.

당분간은
이 고요를 급하게 채우지 않으려 한다.
사람으로 덮지도 않고,
의미로 과장하지도 않고,
그냥 나와 단둘이 앉아 있어 보기로 한다.

과열이 식은 자리는 낯설다.
하지만 어쩌면,
여기서부터 다시 형태가 잡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