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머리라는 건 뭘까
어쩌다 보니 이런 생각이 스쳤다.
AI가 많은 것을 대신하는 시대에
오히려 더 중요해진 것은
‘공부머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그렇게 스쳐 지나갔는데,
곧바로 이런 의문이 따라왔다.
그래서
대체 ‘공부머리’라는 게 뭘까.
우리는 이 말을 꽤 자주 쓴다.
“쟤는 공부머리가 있네.”
“나는 공부머리는 아닌 것 같아.”
“공부머리는 타고나는 거지.”
그런데 막상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설명하려 하면
생각보다 흐릿하다.
보통은 그냥 느낌으로 사용한다.
문제를 빨리 푸는 사람을 보고도
“공부머리 있다”고 하고,
어려운 내용을 잘 이해하는 사람을 보고도
같은 말을 한다.
설명을 잘하는 사람에게도,
여러 개념을 연결해서 말하는 사람에게도
비슷한 표현을 쓴다.
이쯤 되면 조금 궁금해진다.
우리가 말하는 ‘공부머리’는
정확히 어떤 능력을 가리키는 걸까.
나는 어떤 대상을 이해할 때
가능하면 먼저 그 말의 뜻부터 살펴보는 편이다.
이름이 붙어 있다는 건
이미 어떤 감각이나 경험이
그 안에 묶여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공부머리’라는 말을
조금 천천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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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떠올리는 공부머리
보통 사람들이 떠올리는 공부머리에는
몇 가지 이미지가 섞여 있는 것 같다.
문제를 빠르게 푸는 사람.
어려운 내용을 한 번에 이해하는 사람.
설명을 잘하는 사람.
여러 개념을 연결해서 말하는 사람.
이 중 무엇을 떠올리든
대체로 한 가지 공통된 느낌이 있다.
“아, 저 사람은 이해가 빠르다.”
그렇다면 공부머리는
결국 이해 능력을 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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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된다는 것
누군가의 설명을 들을 때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말은 계속 이어지는데
머릿속에 아무 그림도 그려지지 않는 설명.
반대로 어떤 설명은
듣는 순간 머릿속에 구조가 생긴다.
“아, 이런 얘기였구나.”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하나의 틀 안에서 정리되는 느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을 이렇게 표현할 것이다.
“아, 이제 이해됐다.”
생각해 보면
이 상태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핵심이 무엇인지 보인다.
어디서부터 설명하면 될지 감이 잡힌다.
다른 개념들과도 연결이 된다.
즉, 이해라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아는 상태라기보다
정보 사이의 관계가 보이는 상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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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료도 필요하다
학생 때는
암기를 조금 우습게 여겼던 기억도 있다.
이해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는 ‘주입식 교육’이라는 말도
꽤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뭔가 생각 없이 머릿속에 지식을
억지로 집어넣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기를 강조하는 방식이
좋은 공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떤 구조를 이해하려면
머릿속에 어느 정도의 재료가
먼저 쌓여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이나 경험이 많으면
새로운 설명을 들을 때
“아, 이건 저거랑 비슷한 구조네.”
하고 금방 연결이 된다.
하지만 그런 재료가 없다면
설명을 들어도
그냥 말들이 지나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주입’이라는 말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입을
“생각 없이 외우게 하는 교육”으로만 보면
거부감이 들지만,
조금 다르게 보면
지식의 기반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이해와 암기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런 관계에 가까운 것 같다.
암기는 재료고,
이해는 구조다.
재료가 없으면
구조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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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머리라는 것
이렇게 생각해 보면
‘공부머리’라는 말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공부머리는
단순히 많이 아는 능력이라기보다
재료가 되는 지식들을 쌓고
그 지식들 사이의 구조를 발견하는 능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흩어진 정보를
하나의 틀 안에서 정리하고,
그 관계를 파악하고,
다른 개념과 연결하는 능력.
그래서 어떤 사람의 설명을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 저 사람은 세상을 이해하는 해상도가 높다.”
같은 정보를 보더라도
그 안에서 더 많은 구조와 관계를
읽어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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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공부머리
예전에는
많이 아는 것이 중요했다.
지식 자체가 희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를 찾는 일은 훨씬 쉬워졌다.
검색도 있고,
AI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제는 외울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차피 필요하면
그때 찾아보면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막상 생각해 보면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어떤 설명을 이해하려면
머릿속에 연결할 수 있는 재료가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지식들을
어느 정도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것,
즉 암기하는 일도 여전히 중요하다.
AI가 정보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 정보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결국 사람이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AI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필요한 지식들을
어느 정도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것과
그 지식들을
구조로 이해하고 연결하는 능력,
이 두 가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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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래서 이렇게 정리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공부머리라는 것은
단순히 공부를 잘하는 머리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구조를
조금씩 만들어가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구조가 많아질수록
사람이 보는 세계도
조금 더 또렷해지는 것 같다.
마치
세상을 보는 해상도가 조금씩 올라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