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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라는 말은 참 이상하다

개발자라는 말은 참 이상하다.

부동산 개발자, 게임 개발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이런 표현들은 꽤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결국
뒤에 ‘자(者)’ 하나 붙인 말이다.

개발하는 사람.

막상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개발이라는 단어 자체가 꽤 넓기 때문이다.

잠재된 것을 끌어내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기술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개발자라는 말은
직업 이름치고는 꽤 애매한 표현처럼 느껴진다.

영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developer.

develop + er.

디벨롭 하는 사람.

말로 풀어보면 결국
“무언가를 발전시키는 사람” 정도의 뜻이다.

그래서인지 이 단어 역시
내가 하는 일을 딱 집어서 설명하는 느낌은 아니다.

나는 만화나 웹툰, 애니메이션, 광고 같은
그래픽 결과물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단순히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런 것들을 직접 만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각디자인학과를 전공하게 됐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한동안 편집물을 만드는 일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프론트엔드 개발을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디자인도 개발도 결국
어떤 것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종류의 작업 같기도 하다.

기술 분야라는 것이
마치 또렷하게 나뉘어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프론트엔드, 백엔드, 인프라 같은 식으로
각자의 영역이 분명하게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막상 경험해보면
이 경계가 그렇게 단단한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꽤 오래전부터
기술 영역의 경계는
조금씩 흐려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영역이든
시간을 들여 파고들면
결국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실제로 해 보면
각 분야마다 깊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무에서 중요한 것은
‘이해할 수 있느냐’ 보다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느냐’에 가깝다.

조직이 원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그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괜한 자신감일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하게 된다.

그래도 가끔은
기술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넓게 이어진 하나의 지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직업적으로 나는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협업을 하다 보면
프론트엔드라는 역할이 조금 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이거 화면 하나 만들어 주세요.”
라는 식으로 일이 들어온다.

그럴 때 나는
그저 화면을 만드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또 어떤 순간에는
“프론트 전문가 아니에요?”
라는 말이 나온다.

이럴 때는
갑자기 전문가가 된다.

상황에 따라
화면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전문가가 되기도 한다.

이런 역할의 변화가
가끔은 묘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나는 정확히 뭐지?”라는 생각을 했다.

프론트엔드 개발자인가.
개발자인가.
developer인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오래 따라다녔다.

그러다 보니
software engineer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이 표현이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프론트엔드냐
백엔드냐
이런 식으로 먼저 나누기보다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다루는 사람
같은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소개할 때

“프론트엔드 개발자입니다.”

보다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데
지금은 프론트엔드 쪽 일을 많이 합니다.”

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나는 메이커 성향도 조금 있는 것 같다.

큰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기보다는
작은 도구 같은 것을 만들어 보는 쪽이 더 끌린다.

예를 들면

  • 크롬 익스텐션
  • 간단한 앱
  • 개인적으로 쓰는 작은 도구

같은 것들이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는 그런 것들을 많이 만들어 보지는 못했다.

먹고 살다 보니
회사 일 하느라 바빴고
그 와중에 이것저것 배우고 적응하느라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어느덧 8년 차가 됐는데도
막상 개인적으로 만들어 본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요즘은 AI 덕분에
이런 것들을 만드는 장벽도 많이 낮아진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작은 것들부터 하나씩 만들어 볼 생각을 하고 있다.

뭐든 하나라도.

결국 지금의 결론은 단순하다.

나는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지만
정체성은 그보다 조금 더 넓은 것 같다.

아마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면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

지금의 나는
그 정도쯤 되는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