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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보다 동사라는 말

명사보다 동사라는 말

학교 때부터 사람을 줄 세우는 구조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시험을 보면
누가 몇 등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회사에 가면
평가 등급이 생긴다.

누가 더 잘했는지,
누가 더 인정받는지,
그 순서가 금방 드러난다.

그게 꼭 필요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구조를 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누가 더 앞에 있는지,
누가 더 잘하는지,
그걸 확인하는 일.

누군가는
그게 인간의 인정 욕구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기 위치를 확인하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아마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면
생각하기가 편해진다.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위치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업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끔 자신을 잘 팔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어떤 사람인지 빠르게 설명하고,
쉽게 이해되도록 정리하는 것.

어쩌면 그것도
비슷한 방식일지 모른다.

사람을 하나의 설명 가능한 형태로
정리하는 일.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사람을 명사로 설명하기보다
어떤 동사를 실천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그 말이 꽤 인상 깊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을 설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명사를 붙이는 것이다.

어느 회사 사람인지,
어느 학교 출신인지,
어떤 직급인지.

명사는
타인을 위한 설명에 가깝다.

사회 속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분류하기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명사가 없으면
우리는 서로를 너무 어렵게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사는
내 삶에 더 가까운 말이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걸 설명하는 말이니까.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무엇을 시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둘 중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명사는
세상 속에서 나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하고,
동사는
내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다.

그래서 가끔은
나는 어떤 명사인가를 아예 무시하기보다,
어떤 동사를 실천하며 살고 있는지를
조금 더 중요하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생각은 생각이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을 분류하는 방식도
아마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 게임에 완전히 뛰어들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거리를 두기도 한다.

나는 한동안
그 사이에서 조금 헷갈렸던 것 같다.

요즘은
게임이 있다는 건 인정하되,
삶의 중심을 거기에 두지는 않으려고 한다.

사회에서는
필요한 만큼 설명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어떤 동사를 살고 있는 사람인지
그걸 더 중요하게 보려고 한다.

생각처럼 될지는 모르겠다.

가끔은
그 게임에 감정적으로 휘둘리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 앞서가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회사 이름이나
괜찮은 직함 같은 것들도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얻고 싶다.

이런 마음이 완전히 이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욕망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일종의 에너지 같은 것이니까.

다만 그 에너지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사람이 쉽게 휘둘리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그 욕망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조금 거리를 두고 보려고 한다.

아마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냥
그런 마음도 있는 인간이라고 인정한다.

그래도 가끔
이 질문을 떠올린다.

나는 지금
어떤 동사를 살고 있는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