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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없는 사람, 혹은 좌표를 고르지 않은 사람

“고향이 어디예요?”

스쳐지나가는 이 질문은 단순한 정보처럼 보이지만,
나는 한 번에 답하기가 어렵다.

태어난 곳은 강원도 태백이다.
태백시장, 흙다리골.
입 밖으로 꺼내면 괜히 웃음이 조금 섞인다.
정겹고, 그립기도 하다.
감정으로만 따지면, 아마 가장 가까운 고향은 그곳일 것이다.

서울로 올라와 처음 살았던 곳은 봉천동이다.
출발점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지금의 나를 설명해줄 만큼의 중심은 아니다.

그 사이 가장 긴 시간을 보낸 곳은 양재동이다.

주변에 도곡동, 역삼동, 대치동, 개포동, 삼성동이 있는 동네.
조금만 나가면 번화가고,
조금만 빠지면 시골 같아지기도 해서 희한했다.

도시 한가운데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바깥으로 밀려난 느낌이 들고,
그 경계가 생각보다 자주 바뀌는 곳이었다.

돌아보면,
내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지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곳도 아마 그곳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의미의 고향을 하나 꼽으라면,
아직은 양재동에 가깝다.

지금 살고 있는 방이동도 조금 비슷하다.
석촌동과 잠실동 사이에 놓인 그 분위기.
어디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은 채,
여러 흐름 사이에 놓여 있는 느낌.

이렇게 나눠보면
내 고향은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

감정으로는 태백에 가깝고,
삶의 형태는 양재동에서 만들어졌으며,
출발은 봉천동에서 시작됐다.

각각은 분명 의미가 있지만,
셋 중 어느 하나도
완전히 “돌아갈 곳”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씩 어긋나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고향이 없는 사람 같다고 느낀다.

꼭 하나로 정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에게 ‘고향’이라는 곳은
그렇게 가볍게 흘려버릴 수만은 없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어디서 왔는지, 무엇이 나를 만들었는지,
어디를 떠올릴 때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되는지 같은 것들이
그 안에 같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고향이 없는 게 아니라
하나로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 가깝다.

어디에도 완전히 기대지 않지만,
어디에도 완전히 떨어져 있지는 않은 상태.

그래서 요즘은
고향을 정의하려 하기보다
말하는 방식을 정해두는 편이다.

“양재동에서 오래 살았고, 지금은 방이동에서 살고 있어요.”

이 문장은 설명이 길지 않아서 좋고,
지금의 나와도 가장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어쩌면 고향이라는 것도
하나의 지명을 고르는 일이라기보다,
내가 어디에 더 오래 마음을 두고 살아왔는지를
천천히 알아가는 일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