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이 피곤한 시대에, 주도권이라는 말
토스증권 AI 광고를 보다가, ‘어닝콜’이 뭐지 싶어 조금 들여다보게 됐다.
처음엔 그냥 용어 하나를 확인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런데 보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건 개별 기능보다도, 그것들을 한데 묶어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토스증권 AI의 첫 화면에는 기능들이 다음과 같은 문구로 나뉘어 있었다.
이유를 아는 주도권.
숫자 너머를 보는 주도권.
시장 흐름을 읽는 주도권.
기회를 선점하는 주도권.
문구만 놓고 보면 증권 서비스의 기능 소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단순히 정보를 더 주겠다는 말이라기보다, 뒤처지지 않는 사람의 감각을 주겠다는 말에 가까워 보였다.
내 주식이 왜 움직였는지 알려주는 시그널,
글로벌 CEO에게 직접 듣는 어닝콜,
실시간 이슈,
증시 캘린더.
이런 기능들을 하나씩 풀어 설명하는 대신, 그것들을 전부 ‘주도권’이라는 단어 아래에 묶어 놓은 것도 흥미로웠다.
사용자가 정말 원하는 것은 정보도 정보지만,
정보 앞에서 덜 헤매는 상태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요즘 사람들은 정보가 부족해서 힘든 경우보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지치는 경우가 더 많아진지도 오래된 것 같다.
무언가를 판단하려고 하면 볼 수 있는 자료는 끝도 없이 많다.
뉴스도 많고,
해설도 많고,
비교할 대상도 많고,
남의 의견도 많다.
심지어 그 모든 것은 가만히 있지도 않고 계속 갱신된다.
그래서 판단은 점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 전 처리의 문제가 되어 간다.
무엇을 먼저 보고,
무엇을 넘기고,
무엇을 신경 써야 하는지 정하기도 전에 이미 기력이 빠진다.
이럴 때 떠오르는 비유가 하나 있다.
주술회전의 고죠 사토루가 쓰는 무량공처 같은 것 말이다.
상대에게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밀려들어 와서,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술.
물론 현실이 그런 식으로 직접 마비를 걸어오지는 않지만,
가끔은 지금의 정보 환경도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정보는 넘치는데 판단은 또렷해지지 않고, 오히려 잠깐 멈춰 서서 아무것도 못 고르게 되는 순간들.
그런데 이 피로는 단순히 정보가 많아서만 생기지는 않는다.
그 많은 정보 속에서도 사람은 여전히 더 잘 판단해야 한다고, 가능하면 최적의 답에 가까워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어딘가에는 분명 더 나은 답이 있을 것 같고,
내가 아직 그것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을 뿐인 것 같은 감각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판단 피로는 자책 피로와도 붙어 다닌다.
조금 더 볼 수 있었는데.
조금 더 알아보고 결정했어야 했는데.
더 나은 답이 있었던 건 아닐까.
판단 하나가 끝난 뒤에도 사람은 자주 그 주변을 서성인다.
그래서 요즘의 좋은 서비스들은 점점 ‘최고의 판단’을 약속하기보다 ‘덜 피곤한 판단’을 약속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아까 본 광고도 그런 식으로 읽혔다.
AI는 전면에 서 있지만,
실제로 팔고 있는 것은 판단의 부담을 조금 덜어주겠다는 약속에 가까워 보였다.
왜 움직였는지 알려주고,
뭘 먼저 보면 되는지 보여주고,
중요한 일정을 미리 챙겨주고,
복잡한 설명 대신 핵심만 먼저 잡아주는 것.
이건 사용자를 더 똑똑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말이라기보다,
적어도 덜 헤매게 해주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정보가 적을 때는 좋은 판단이 경쟁력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보가 넘치는 지금은,
판단 자체보다 판단에 들어가기 전 소 모를 줄여주는 것이 더 큰 경쟁력이 되어 가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정답을 알려주겠다는 말보다, 흐름을 읽게 해주겠다는 말이 더 강하게 들린다.
‘주도권’이라는 단어도 그런 맥락에서 힘을 얻는 것 같다.
완벽한 우위를 준다는 뜻이라기보다, 적어도 끌려다니지는 않게 해주겠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좋은 판단을 원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먼저 원하는 것은, 판단 앞에서 지나치게 소모되지 않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요즘 매력적으로 보이는 서비스들은 정답을 파는 척하면서,
사실은 그 전에 있는 피로를 먼저 건드리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