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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게 이해한 것들

코로나가 처음 퍼지던 무렵의 나는,
그 일을 완전히 내 일처럼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세상이 흔들린다는 말은 들렸고,
경기가 얼어붙는다는 뉴스도 봤다.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고,
누군가는 앞날을 걱정했고,
누군가는 삶의 방향을 급히 바꿔야 했다.

그런 이야기들이 분명 주변에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어딘가 그것을
한 겹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 일이 내 삶의 감각을 얼마나 바꿔놓을지까지는
실감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기의 나는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어느 정도는 읽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주 무방비한 사람은 아닐 거라고,
어떤 변화가 와도 어떻게든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데이터 크라우드소싱 회사를 퇴사한 뒤,
나는 코로나 시기에
물류와 풀필먼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때는 그것이 거창한 결단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경기가 흔들리는 와중에,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곳,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는 곳을 보고 움직였을 뿐이었다.

남들이 불안해하던 시절에
나도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 움직였고,
그렇게 다음 칸으로 건너갔다.

지금 와서 보면
그건 단순한 이직만은 아니었다.

시대의 흐름이 내 커리어를 직접 밀어 움직이던 순간이었고,
나는 그 안에서 생각보다 꽤 현실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거리두기가 해제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퇴사했다는 사실까지 타임라인에 놓고 보니,
내 삶의 몇 년이 그 시절과 거의 정확히 맞물려 있었다는 것도
새삼 보였다.

그걸 보면서 조금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그 시절을 통과해 왔는데,
정작 그 시절의 불안을 처음부터 제대로 이해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

세상이 흔들린다는 말의 무게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직 내 몸으로 겪지 않은 불안에 대해서는
충분히 실감하지 못했다는 생각.

그때의 나는 어딘가 그것을 조금 멀리서 보고 있었고,
그 사실이 지금 와서는 약간 민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게 아주 특별한 일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원래
자신을 직접 덮치지 않은 불안을
끝까지 실감하기 어렵다.

머리로는 알아도
생활로는 잘 모를 때가 많다.

뉴스 속 불안과
내 삶 안의 불안은
밀도가 다르다.

그래서 당시의 나는 세상을 몰랐다기보다,
아직 나를 흔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불안을
멀리서 보고 있었던 쪽에 가까웠을 것이다.

요즘은 다르게 읽히는 것들이 있다.

불경기와 AI라는 말을 들으면
예전처럼 멀리서 듣게 되지 않는다.

채용이 줄고,
일이 흔들리고,
사람들의 불안이 커지고,
어떤 능력은 갑자기 애매해지고,
어떤 자리는 생각보다 쉽게 불안정해진다.

예전에는 그런 장면을 보며
많이 힘들겠네 정도로 지나쳤다면,
지금은 그 말이 생활 가까이 붙는다.

불안이 어떻게 사람의 리듬을 무너뜨리는지,
판단을 위축시키는지,
자존감을 건드리는지,
미래를 상상하는 힘을 빼앗는지
조금은 더 현실적으로 알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의 후유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도
예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큰 사건은
사건이 끝났다고 해서 바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뒤가 더 길 수 있다는 것.

겉으로는 일상이 돌아온 것처럼 보여도
사람 안에서는 한참 뒤까지
무언가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런 사실을 예전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원래부터 겸손한 사람이어서 겸손해진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내 삶을 직접 건드리고 나서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보게 된 것 같다.

그 사실이 조금 우습기도 하다.

꼭 이런 과정을 지나고 나서야
타인의 불안이 더 또렷하게 보이고,
지나간 시절의 표정들이 다시 읽히고,
내가 얼마나 멀리서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다니.

약간은 늦었고,
약간은 민망하고,
그래서 더 솔직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런 늦은 이해가
아주 헛된 것 같지는 않다.

예전의 나는 세상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나는 적어도
안다고 쉽게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대신 누군가의 불안과 흔들림을
예전보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고,
왜 저렇게 힘들어하지보다
아, 저게 저런 뜻이었구나 쪽으로
조금 더 가까워졌다.

대단한 깨달음이라기보다,
뒤늦게 도착한 현실감에 가까웠다.

생각해 보면 삶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바꾸는 것 같다.

어떤 말은 바로 이해되지 않고,
어떤 시대는 지나간 뒤에야 다시 보이고,
어떤 감각은 내 삶 가까이 들어오고 나서야
조금 다르게 읽힌다.

내가 이해한 것들 중에는,
조금 늦게 도착한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