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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말하지 않고 한 번 더 보고 있었네

나는 가끔 대화가 끝난 뒤에
내가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됐을지에 대해 다시 점검해보곤 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원래
어딘가 어긋난 느낌을 빨리 감지하는 편인 것 같다.

물론 내가 느끼는 어긋남이
언제나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떤 순간에는
말과 태도가 묘하게 맞지 않는다거나,
겉으로는 멀쩡한데 이상하게 편하지 않다거나,
설명보다 먼저 어딘가 걸리는 느낌이 있다.

문제는 그다음인 것 같다.

나는 그걸 바로 말하기보다,
내가 과민한 건 아닌지
내 쪽에서 한 번 더 점검해보려는 편이다.

조금 더 보고,
조금 더 지나가게 두고,
내가 잘못 읽은 건 아닌지 보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는 그대로 두기 어렵다고 느껴지면
그제야 반응이 나온다.

내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바뀐 것이 아닐 수 있다.
이미 충분하다고 느껴질 만큼 걸렸고,
이미 몇 번은 보류했고,
이미 어느 정도는 쌓인 뒤일 수도 있다.

그런데 상대 입장에서는 대개
그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본인은 평소처럼 말하고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거리를 두거나
말수를 줄이거나
필요한 말만 남기고 물러서면
오히려 내가 더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 시간차 때문에,
내가 일부러 함정을 파놓고
상대가 걸리기만 기다린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연히 실제로 그러고 싶은 건 아니다.

내가 뭐라고 상대를 시험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잘못을 잡아내고 싶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웬만하면 좋은 쪽으로 이해해보려는 편이고,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지도 같이 보려는 쪽에 가깝다.

그런데 바로 말하지 않고
내 안에서 한 번 더 정리하려는 습관 때문에
상대에게는 전혀 다른 식으로 전달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이런 경향은 원래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다만 개발을 하면서
그 성향이 더 또렷해진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개발은 자꾸 원인을 찾게 만든다.
왜 안 되는지,
어디서 꼬였는지,
겉으로 드러난 증상 말고
실제로 문제를 만들고 있는 흐름이 무엇인지를 보게 만든다.

어떤 문제는
정확히 설명하기 전에
먼저 “뭔가 어긋났는데” 같은 감각으로 오기도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원인을 찾고,
맥락을 따지고,
앞뒤를 맞춰보게 된다.

디자인을 하면서는
또 다른 쪽이 예민해진 것 같다.

톤이 맞는지,
형태와 내용이 어긋나지 않는지,
표면은 멀쩡한데 왜 어딘가 불편한지,
그런 걸 보는 감각이 더 살아났다.

그러니까 원래도 있던 성향 위에
개발은 나를 더 따지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디자인은 나를 더 보게 만드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셈이다.

문제는 이 감각이
일할 때만 켜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람을 볼 때도,
대화를 할 때도,
어떤 분위기 속에 있을 때도
이 안테나는 너무 쉽게 켜진다.

누군가의 말이 왜 거슬렸는지,
왜 그 공기가 불편했는지,
왜 설명은 되지 않는데 신뢰가 가지 않는지,
그런 것들을 나도 모르게 계속 점검하고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는 대화를 하는 동시에
그 대화를 같이 디버깅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상대가 한 말을 듣고,
그 말의 맥락을 보고,
내 반응을 보고,
내 반응이 어떻게 전달됐을지도 다시 보고.

그게 늘 좋은 쪽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덜 속게 되는 면도 있고,
말과 태도의 불일치를 더 빨리 감지하게 되는 면도 있고,
겉으로 매끈한 것에 쉽게 넘어가지 않게 되는 면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꽤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남들은 그냥 넘어가는 것을
혼자 오래 붙잡게 만들고,
대화가 끝난 뒤에도
내가 뭘 들었고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다시 점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더 잘 읽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덜 늦게 말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다 참거나 다 따지는 것 말고,
그 중간 어디쯤에서
내 쪽의 선을 조금 더 일찍 드러내는 방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모든 어긋남을 다 해석하려 들기보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그냥 거기 있는 것으로 두는 쪽이
덜 피곤하다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됐다.

생각해보면
나는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을 너무 늦게 알아차리는 편이 아니라,
바로 말하지 않고
한 번 더 보고 있었던 쪽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감각 자체보다
그 감각을 다루는 방식일 것이다.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더 정확하게 읽는 능력보다,
조금 더 이르게 말하고
조금 덜 붙잡는 연습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