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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딸깍을 일이라고 부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딸깍의 시대”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어쩐지 그 표현이 조금 더 조심스럽게 쓰여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버튼 한 번 누르면 결과가 나오고,
사람은 그 앞에서 대충 지시만 하면 되는 것처럼 들렸다.
특히 개발이라는 일을 해온 사람 입장에서는,
그 말이 누군가의 시간을 너무 가볍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밀어내지는 못했다.

어쩌면 딸깍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막연히 상상해오던 ‘미래의 일하는 모습’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컴퓨터에게 무언가를 말하면,
컴퓨터가 알아듣고,
대신 만들고,
결과를 보여주는 장면.

생각해보면 그런 장면은 나만 상상하던 것도 아니었다.
영화나 만화, 광고에서도, 미래를 말하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비슷한 모습이 반복되었다.

나 역시 그런 미래를 아주 낯설게만 느꼈던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일을 줄이고 싶었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끝난 일을 다시 손으로 오래 밀어 넣는 시간이 지겨울 때도 있었다.
생각이 결과물에 조금 더 빨리 닿기를 바랐다.

그런데 막상 그런 세계가 가까워지자 이상하게 불안해졌다.

딸깍이 싫었던 게 아니라,
딸깍 이후에도 내가 필요한 사람일 수 있는지가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익숙했던 개발자의 노동은 손에 남는 것이었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코드를 고치고,
에러를 추적하고,
이상한 버그 앞에서 한참을 멈춰 있고, 다시 고치고,
PR을 만들고,
리뷰를 받는 것.
그 과정에는 분명한 감각이 있었다.

'내가 지금 이 일 안에 들어와 있다는 감각.'
'내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감각.'
'내가 시간을 들였고, 그 시간이 코드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감각.'

물론 개발자의 일은 예전부터 쉽게 설명되는 일이 아니었다.

같은 하루를 보내도 누군가는 기능을 만들고,
누군가는 버그 하나를 추적하고,
누군가는 구조를 정리하고,
누군가는 앞으로 생길 문제를 줄이기 위해 이름과 경계를 다시 잡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만으로는 그 일이 어떤 무게였는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AI 에이전트가 만든 변화는 그 애매함을 새로 만든 것이라기보다,
원래도 쉽게 설명되지 않던 일을 더 낯선 방식으로 다시 설명하게 만든 것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에이전트가 들어오면서 직접 코드를 치는 시간은 줄어든다.
대신 문제를 나누고,
설명하고,
맡기고,
기다리고,
결과를 읽고,
다시 고치라고 말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겉으로 보기에는 덜 일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 맡길지 판단해야 하고,
무엇을 버릴지 골라야 하고,
결과물이 왜 어색한지 설명해야 하고,
다시 어떤 방향으로 수정할지 결정해야 한다.
코드를 치는 손의 비중은 줄어들어도,
판단의 비중은 줄어들지 않는다.

문제는 그 판단의 시간들이 아직 내 몸에는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X와 스레드, 링크드인과 유튜브를 보면 사람들은 이미 온갖 것을 하고 있다.
다들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것 같고,
새로운 도구를 훨씬 자연스럽게 쓰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아직 “직접 코드를 짜는 비율 80, 에이전트 20” 근처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누군가는 이미 그 비율을 뒤집어 말하고 있다.

직접 코드 20, 에이전트 80.

그 차이는 단순한 도구 사용의 차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일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는데,
나는 아직 예전의 감각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이런 감각을 느낀지는 꽤 되었다.

AI가 코드를 대신 써주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보다 조금 전부터도 비슷한 불안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그때는 그것을 딱히 하나의 문장으로 붙잡지 못했다.

그저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개발자의 일하는 모습이 조금씩 낯설어지고 있다는 느낌.

이제서야 그 감각을 이렇게 글로 정리해보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안드레 카파시 인터뷰의 초입부가 인상 깊었다.

그도 계속 어디까지 가능한지 탐색하고,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Claude Code나 Codex 같은 에이전트를 어떻게 더 잘 활용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단순히 한 세션씩 써보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더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계속 묻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claw가 뭔지” 같은 것까지 솔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게 이상하게 놀라웠다.

저런 사람도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구나.
저런 사람도 최전선에 있고 싶어 하고,
계속 탐색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FOMO를 느끼는구나.

그 장면을 보고 나니 최전선이라는 말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최전선은 이미 모든 것을 아는 사람들의 자리가 아니라,
모르는 것을 숨기지 않고 계속 만져보는 사람들의 자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딸깍”이라는 말도 조금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 말이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누군가의 노동을 너무 쉽게 지워버리는 말처럼 쓰일 때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을 조금 유머처럼 소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딸깍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익숙하게 붙잡고 있던 노동의 모양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 전환에 완전히 익숙하지 않다.
여전히 직접 코드를 쳐야 내가 일한 것 같고,
결과물이 내 손을 덜 거쳐 나오면 괜히 찜찜하다.

딸깍이라는 말이 불편한 이유가 꼭 누군가의 노동을 지우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어렵게 익혀온 일들이 어느 순간 너무 쉽게 처리되는 장면 앞에서, 아직 그 쉬움에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는 감각도 있다. 쉽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손이 멈춘다.
내 기준의 노동은 아직 예전의 속도에 묶여 있는데,
도구는 이미 그보다 훨씬 앞에서 결과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로 과한 상상이나 극단적인 이야기들이 들어온다.
이제는 내가 해온 일이 전부 의미 없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지금까지 익힌 방식이 한순간에 낡아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작다.
쉬워진 부분을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일.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물어보고,
따라 해보고,
실행해보고,
기록하는 일.
본래 해오던 일을, 단지 새로운 도구와 함께 다시 해보는 일.

이제는 적어도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나는 아직 딸깍을 일이라고 부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딸깍처럼 보이는 일 안에 무엇이 남고,
무엇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지 천천히 확인하는 중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정말로 배우고 있는 것은 AI를 쓰는 법만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우리가 상상해오던 미래가 실제로 내 앞에 왔을 때 그것을 너무 무서워하지 않는 법일지도 모른다.